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
Drawings on iPad, Unsung Han
2023. 05. 18 ~ 2023. 05. 31.
한운성
Unsung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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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사 Gloriasa Superba, 50x4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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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61x91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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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Papaver Somniferum, 61x91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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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s and Carnations-I, 50x7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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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황철죽 Rhododendron Japonicum, 61x91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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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Cucurbita Moschata, 91x61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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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Papaver Somniferum, 50x7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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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Campsis Grandiflora, 61x91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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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Rue du Petit Puits, Marseille, 91x61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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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쁘띠프랑스, 50x7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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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vetia Bristol Hotel, Firenze, 50x4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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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광화문, 70x5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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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숯구이, 50x4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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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y Eight Jesuses, Fatima, Portugal, 50x7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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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40x50cm, iPad Drawing,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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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Exhibition
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 : 회화의 새로운 지평
맹소영
한운성(韓雲晟, 1946~)은 지금까지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평면 매체를 실험해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기존 캔버스에서 벗어나 아이패드 디지털 드로잉을 선보이며 미술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사실상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등 상업미술 분야 종사자를 포함한 국내·외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아이패드를 사용한 미술 활동이 크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아날로그 회화 작업에 천착해온 순수미술 작가가 아이패드 작품만으로 개인전을 펼친 사례는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를 제외하면 상당히 드물 것이다. 특히나 국내 화단에서 회화 작업을 이어온 한운성과 비슷한 세대의 원로작가 중에서라면 더욱 이례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운성의 예술 행적을 살펴본다면 순수회화 도구로써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과감한 도전 정신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말까지 판화와 회화를 병행해오던 한운성은 현재까지 회화 작업을 위주로 활동 중이다. 수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회화는 기술의 발전에 상응하는 새로운 첨단 매체가 화단에 등장할 때마다 꾸준히 위기설이 제기되었음에도 여전히 살아남은 유의미한 미술 매체다. 오늘날 회화의 생존은 그 어떤 비약적인 첨단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장인정신과 회화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그 존재가치를 확인시키려는 동시대 작가들의 꾸준한 실험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운성의 오랜 작품 활동 역시 전통적 재현 회화의 논리를 탈피하기 위한 여러 형식과 방법론 탐구의 연속이었다. 그가 다양한 매체를 실험한 것도 곧 회화에 대한 본질탐구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시기부터 한운성은 회화와 타(他) 매체의 표현기법을 상호적으로 다루기를 시도하며 그의 회화작품에서 표현의 다양성을 획득하고자 했다.1) 첨단 매체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80년대에는 사진과 복사기를 이용한 출력물을 캔버스에 콜라주 한 것부터 90년대 초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드로잉까지 그는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를 놓치지 않았다.2) 그러나 한운성의 이러한 매체적 도전이 단순 표현의 확장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첨단 매체는 동시대의 시각문화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시대성을 담보하는 작품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들어맞는 것이었다. 한운성이 최근 아이패드로 작업하기 시작한 이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쉽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운성이 처음 아이패드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상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는 2021, 2022년에 걸쳐 그동안에 작업한 작품 대부분을 국공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나서 다시 캔버스 앞에 서기가 머쓱하다고 언급한 적 있다. 이후 건강상의 이유도 있어 한운성은 작업실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고 캔버스를 대체할 매체를 찾아 잠시 수채화에 몰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그다음으로 작업을 이어갈 대체재를 찾은 것이 바로 아이패드였다. 아이패드는 시·공간의 제약이 따르지 않고 화구와 재료를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든 작가가 원하는 대로 작업할 수 있다.기본 소프트웨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브러쉬 툴은 모든 재료 표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해주었다, 심지어 이미지 편집과 수정이 빠르고 무한 복제까지 가능하니 작업 시간도 훨씬 단축되었다. 이러한 장점은 한운성에게 아이패드가 편리한 취미 도구 이상으로시대성을 동반하고 새로운 회화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미술 도구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기존 <디지로그 풍경>과 <꽃(Flos)>을 제작할 당시 캔버스에 옮겨지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패드로 작업한 것이다. 사실상 건강상태와 팬데믹 사태가 겹치며 외부활동에 제약이 생긴 작가가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디지털 사진기에 남아있는 자료들은 가장 최근작답게 두 연작과 연관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를 참고하게 되면서 작품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디지로그 풍경>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한 시리즈로 한운성이 직접 찍은 디지털 풍경 사진을 아날로그 회화로 재편집하며 현대사회의 단편적이고 관습적인 시각을 꼬집은 작품이다. <꽃(Flos)> 연작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디지로그 풍경>의 다음 시리즈로 꽃 이미지를 통해 생명의 순환을 다룬다. 한운성은 이번 작품에서도 기존 전통회화에서의 조형 논리와 표현법을 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디지털 작업을 거치면서 다른 시각적 유희가 생성되었고 어떤 작품은 그 의미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한운성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디지털 프린트로 출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원하는 수 만큼 인쇄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의 장점을 활용한 것이다. 대신 한 점이 아닌 판화처럼 한정된 복수의 작품을 출력하여 에디션 넘버를 기재했는데 이렇게 하면 각 작품은 사본이 아닌 원본의 자격을 얻게 된다. 이는 ‘판’이라는 원본이 존재하면서 거듭할수록 원본과 멀어지는 아날로그 판화의 한계마저 극복해주는 것이었다. 회화적 효과로 표현된 디지털 작품이 출력되면서 최종적으로 이것이 아날로그인지 디지털인지, 회화작품인지 판화인지 사진인지, 장르의 구분마저 모호해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한편, 새로운 <디지로그 풍경>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기존 캔버스 작품보다 본래의 의도가 더 명확해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디지로그 풍경>은 원본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수한 온라인상의 이미지 속에서 단편적인 외견만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현대인의 관습적 시각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익숙했던 일상적 풍경은 의도적으로 편집된 모습으로 재생되어 낯설어지고 작가의 주체적 행위로 생산된 사본과 원본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를 캔버스 작업으로 환원하는 기존 작업방식은 회화가 지닌 유일성의 권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운성은 이번 아이패드 작업에서 디지털 프린팅과 에디션 방식을 통해 이 부분을 보완하고자 했다. 아이패드로 그린다는 점을 제외하면 디지털 이미지를 다시 작가의 수공적인 과정으로 복제되는 것은 기존과동일하다. 하지만 다음 과정에서 출력한 사본들에 마치 판화처럼 에디션 넘버를 기재했다. 이것은 각 작품에 독립적인 원본성을 부여하는 행위이며 기존 캔버스 작업보다 원본과 사본의 경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희석하고 있다. 이로써 한운성은 본연의 작가적 행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원본의 디지털 이미지와 재생산된 디지털 드로잉, 그리고 출력된 사본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원본성을 갖게 됨으로써 <디지로그 풍경>이 추구한 본래의 작품 의도와 더 걸맞게 된 것이다.
한운성은 디지털 작업에서도 전통회화의 프로세스와 화풍을 정공법으로 재현하며 특유의 장인적인 기질을 보여준다. 그러는 한편 디지털 브러쉬의 필압(筆壓)에 따라 생성된 고유의 필치와 효과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기존 캔버스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결과적으로 한운성의 아이패드 작품은 단순 전통회화의 모방이 아닌 디지털 작품 그 자체로서 기능하는 것을 보여준다. 한운성에 따르면 이번 전시 제목인 《Drawing on I-Pad》에서 ‘페인팅(Painting)‘이 아닌 ’드로잉(Drawing)’을 사용한 것에 대해 전통적으로 회화가 ’색을 칠한다’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 유화나 아크릴물감으로 재료가 국한되는 것에 비해, 드로잉은 선을 이용하면서 면을채우는 모든 행위까지 일컬으며 포괄적으로 더 많은 재료와 표현법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이로써 한운성은 아이패드작업에 대해 매체와 재료를 떠나 ‘그린다’는 행위로부터 작가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는 확장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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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대 초반부터 90년대까지 한운성은 회화와 판화를 병행해오며 각 매체가 갖는 고유의 기법을 상호적으로 표현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어깨 통증으로 한운성은 전통적인 판화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2) 한운성은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이 나오기 전인 1991년에 페인트 브러쉬(Paint Brush)라는 MS-도스(MS-DOS)의 기초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이문열(李文烈, 1948~)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오디세이아 서울」의 신문 삽화를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1995년에는 『동아일보』에 연재된 주인석(朱仁錫, 1963~2022)의 「첫사랑」의 삽화를 실었다.
*필자 맹소영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2022년 논문 「한운성의 작품 세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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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V
한 운 성
한운성(1946~)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필라델피아 타일러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2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그는 제2회 동아미술제, 제3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비롯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88년 문교부해외파견 교수로 롱비취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사진판화를 연구하였고 2003년에는 Asem-Duo 펠로우쉽으로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프랑스 신구상회화를 연구하였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장,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아시아프 심사위원장, 이동훈미술상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21년, 2022년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등 국공립미술관 여덟 곳에 작품 600여점을 기증한바 있다. 저서로는 「판화세계」 「환쟁이 송」 「그림과 현실(장소현 공저)」 등이 있다.
Unsung Han
Unsung was born in Seoul, 1946 and graduated Department of Painting, College of Fine Arts,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gained M.F.A. degree at the same university in 1972. He was awarded Fulbright Scholarship to the Temple University, Tyler School of Art where he got M.F.A. degree in printmaking major in 1975. Presently he is a professor emeritus at the College of Fine Arts,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had taught at the Department of Painting, College of Fine Arts, He was awarded Grand Prize at the 2nd Dong-A Fine Arts Festival in 1980 and the 3rd Seoul International Print Biennale in 1981. He studied photo based printmaking at the 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ng Beach sponsored by the Korean Ministry of Education in 1988 and research ‘Nouvelle Figuration en France’ at the Université de Paris 1, Pantheon Sorbonne through ASEM-DUO Fellowship. He has donated over 600 works to eight national and public art museums, including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Museum of Art, Daegu Art Museum, and Jeonbuk Museum of Art, between 2021 and 2022.